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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115호
Food
황교익의 맛 칼럼 : 도루묵 식해
VIEW.9694
황교익 강원도 명예도민이자 홍보대사, 유명 맛 칼럼니스트
사진 이제욱





“도루묵으로 식해를 담가 먹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맛나게 먹던 일행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겨울에 들면 도루묵이 무지 잡혀. 한꺼번에 다 먹지 못해. 그러니 보관을 해두고 먹어야겠지. 그래서 식해를 담갔던 거야.”
참 멋대가리 없는 대답인데, 이게 정답이다.



식해는 아시아인의 밥 반찬 
자연은 1년 내내 먹을 거리를 골고루 내어주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한꺼번에 왕창 주어지고 또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든 저장을 해야 하는 데 바다는 이 기복이 특히 심하다. 회유를 하는 물고기는 순식간에 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때에 맞추어 왕창 잡아서 보관을 하며 먹어야 한다.




생선을 썩지 않게 보관을 하는 방법 중에 가장 간단한 것이 건조이다. 수분을 7% 이하로 떨어뜨리면 미생물 번식이 더디어져 오래도록 저장을 할 수 있다.
소금에 절이는 방법도 있다. 젓갈이 그런 음식이다. 단백질이 분해되어 맛에 변주가 일어난다. 반찬으로 더없이 잘 어울린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식해이다. 생선+소금+곡물의 발효 음식이다.
식해는 아시아의 음식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만들어 먹었다. 대체로 쌀 문화권으로 밥과 더없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냉장 기술의 발달 덕에 식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반도에서도 식해는 동해안 지역의 특별한 지역 음식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해안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식해는 가자미식해이다. 속초에 가면 꼭 맛봐야 하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식해가 식탁에 오르면 으레 가자미려니 할 정도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명태식혜도 있고 성대식해도 있고 도루묵식해도 있다. 양미리 식해를 먹은 적도 있다. 생선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르니 반찬으로 더없이 좋은 맛을 내는 것은 똑같다.


도루묵은 돌묵, 돌메기, 돌목어로 불리기도 한다. 
돌묵이라는 이름은 도루묵의 생태를 알 수 있게 해줌과 동시에 도루묵이 강원도 해안 지방의 겨우내 ‘반식량’이었을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도루묵은 냉수성 어종이다. 여름에는 동해 깊은 바다에 서식을 하다가 겨울철 산란기에 이르면 연안으로 몰려들고, 이때에 잡는다. 요즘은 어선들이 그물로 잡지만 그런 배가 없었던 아주 옛날에도 도루묵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산란을 시작하면 연안에 바짝 붙는데, 눈으로도 보인다.




뜰채로도 잡을 수 있다. 통발을 넣어 놓으면 한두 시간 만에 가득 찬다.
그 많은 양을 어떻게든 보관을 하여야 한다. 말린 도루묵은 요즘도 동해안의 시장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진 도루묵 보관법 중의 하나가 소금 절임이다. 장독에 소금과 함께 차곡차곡 넣어 염장을 하였다. 날씨가 추우니 여느 젓갈처럼 완전히 발효되지는 않는다. 한겨울 눈이 팔팔 날릴 때 소금에 절인 이 도루묵을 꺼내어 하룻밤 물에 담가 짠맛을 빼고는 김장김치를 더하여 찌개를 끓여서 먹었다. 이 도루묵 찌개를 나는 강원도 토박이들에게서 말로만 들었다. 맛본 적이 없다. 사라졌다.


소금에 절인 도루묵을 더 맛있게 먹으려면 식해로 하면 된다. 
엿기름에 좁쌀이나 쌀 혹은 보리를 더하고 고춧가루에 마늘 생강 등의 양념을 하여 두면 삭는다. 생선과 소금만의 젓갈과는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지는데, 곡물이 삭으면서 내는 새콤한 맛 덕분이다.
여기에 약간의 매콤함까지 있으니 따끈한 밥 위에 도루묵 식해 한 점이면!
도루묵 식해는 가자미 식해보다 식감이 부드러워 잘 삭은 것은 치아 사이에서 부드럽게 허물어진다.
식해는 겨울 음식이다. 특히 동해안 지역에서는 겨우내 먹는 김장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을 거리가 넉넉하지 않았을 때에는 반식량이었을 것이다. 이제 먹을거리가 넉넉해져 동해안 지역을 여행하여도 식해를 만나기가 어렵다.
도루묵 식해가 식탁에 놓여 있다면 귀하게 귀하게 맛을 보시라. 한두 세대 지나면 말로만 전해지는 음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니.

 


촬영협조
진양식당 속초시 청초호반로 318  ☎ 033-635-9999

          사시사철 도루묵식해가 반찬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