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닥에서 발견된 육지 조각
# 프롤로그
가을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고르고 골라 선명한 파란색을 풀어놓았다.
동해고속도로를 달려 마주 선 바다는 윤슬로 빛나고 있었다. 수줍은 속살을 드러낸 지 이제 몇 달. 품을 수 있는 가장 고운 마음과 멋진 표정을 입장료로 지불하고 발을 내디뎠다.
# 살며시 드러나는 동해의 탄생 이야기
초곡. 草谷. 얼마나 예쁘길래 바다 빛에 풀을 담은 초록 계곡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항구 이름이 그대로 붙여진 둘레길 660m. 길어야 20~30분 남짓한 시간에 불과한데 제법 이야깃거리가 많다. 마치 패키지 선물처럼.
56m 길이의 투명 유리 위를 걷게 만든 출렁다리는 스카이 워크인 듯 아찔하지만 짜릿하다. 아래로 보여지는 기암괴석들의 신비함이 카메라에 한껏 취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동창 모임으로 왔다는 중년 여성의 또래 친구들은 과감하게 누워버린다. “이렇게 찍는 거야!”라며 주뼛거리는 친구를 부른다. 꽤나 시끌벅적하다. 발을 모아 인증 샷을 남기는 젊은 연인들, 유모차를 끌고 올라온 부부들도 기록을 남기려고 포즈를 잡는다. 자기만의 색을 담는데 푹 빠져있는 이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독 어린이나 노약자들이 많다. ‘입 소문을 탄 게지…….’
필자가 느끼기에도 최근에 다녀 본 해안 길 가운데 가장 걷기 편했다.
‘다리가 불편해서, 너무 장시간이라, 강릉의 정동심곡 바다 부채 길 코스가 무리인 분들에게 딱 맞춤’이라던 지인의 귀띔에 공감 200%라는 생각을 하나 보니 어느새 촛대 바위 앞.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고자 할 때, 배를 타고 들어 가 보여주었다던 그 위용을 드러낸다. 소란스러움이 일거에 가라앉는다. 들려오는 건 탄성과 셔터 소리뿐.
해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석회암들이 뭍으로 드러나고 풍화와 침식으로 날카로운 모양에 높이도 제 각각인 돌기둥. 참 잘 어우러져서 예로부터 ‘천하제일의 기괴한 경관(天下第一寄觀)’이라고 불렸다는 이유를 실감한다.
이어지는 석림을 뚫고 자란 송림을 머리에 두고 이어진 데크를 걷다가 ‘멋지다’는 생각이 멈출 때쯤이 이 길의 끝이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용굴에서는 검푸른 파도가 부딪치며 날 것 그대로 깊이 울려 제법 심장을 울린다. 한국전쟁 때 마을 주민들이 작은 배를 타고 숨어 지냈다는 사연을 읽으며 상상을 해봤다.
쪽배를 타고 이곳을 드나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 걸어서 만나는 낭만가도 ‘해안 둘레 길’
해안 접근 도로가 없어 배를 타고 나가야만 볼 수 있었던 곳. 지난 60여 년간 베일에 꽁꽁 싸여있었던 이곳도 軍 철책선이 철거되면서 비로소 일반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신생대 3기 지각 변동으로 일어난 한반도 융기가 동해를 열고 자연이 오랜 세월 빚어 낸 카르스트 지형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석림의 형성까지. 동해 바다의 해안로의 신비는 약 2억 7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연기념물 제437호 정동심곡 바다부채 길(본지 114호)을 시작으로 속초 외옹치 바다향기로(본지 113호), 동해 추암의 출렁다리, 양양 하조대 전망대 둘레길, 양양 죽도해변과 인구해변을 끼고 있는 죽도암의 산책길이 품어 보여주는 동해 탄생의 비밀이다. 지질생태학습공간으로 손색없는 해안단구와 주상절리가 보여주는 감춰졌던 쪽빛 바다, 해송 군락과 희귀식물은 말 그대로 자연의 선물이다.
# 에필로그
꿈틀거렸던 대륙과 펄떡였던 파도가 빚어내어 허락된 세상.
그 위에 인류가 만들어 온 길.
그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에 잠시 다녀온 시간은 위로이자 위안이었다.
TIP
●초곡 용굴 촛대바위 길 : 삼척 근덕면 초곡길 236-20 ※반려동물 입장금지
하절기(3~10월) 09:00 ~ 18:00(입장마감 17:00)
동절기(11~2월) 09:00 ~ 17:00(입장마감 16:00)
●정동심곡 바다부채 길 : 강릉 강동면 심곡리 3-20. (searoad.gtdc.or.kr)
총 길이 2.86㎞의 해안단구 탐방로.
●속초 외옹치 바다 향기로 : 속초 대포동 712. 총 길이 1.74㎞의 해안산책로
●동해 추암해변 촛대바위 출렁다리 길 : 동해 추암동
길이 72m, 폭 2.5m 규모의 다리
●하조대 전망대 둘레 길 : 양양 현북면 하광정리. 총 길이 332m로 전망 테크가 있다.
●죽도암 산책 길: 양양 현남면 새나루 길 26. 전망대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