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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116호
Food
겨울 동해에 가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 곰치국
VIEW.10967
황교익 강원도 명예도민, 유명 맛칼럼니스트
사진 이제욱 본지 객원 작가, 연합뉴스




곰치국은 도시에서 먹으면 맛이 안 난다.

이른 아침 찬바람이 탱탱 부는 동해 부둣가여야 한다. 여기에 더해, 전날 밤에는 술을 한잔해야 한다.
매끈한 살이 깔끔한 국물과 함께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 뱃속은 천국을 맞이한다.
겨울 동해에 가야 하는 이유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이 곰치국이 있기 때문이다.



동해는 미거지, 남해와 황해는 꼼치
물고기 이름을 정확히 익히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학술적 분류 명칭과는 달리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많이 헷갈려하는 것이 꼼치과의 생선이다.
꼼치과의 생선은 한반도 삼면의 바다에서 모두 잡힌다. 얼굴이 둥글하고 눈은 작으며 몸통은 납작하다.
한눈에 “못생겼다”하는 말이 절로 터진다. 손으로 잡으면 미끄덩하다. 살은 무르다. 여름에는 깊은 바다에 있다가 겨울에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몰리고, 이때에 잡아서 먹는다.
이 꼼치과 생선에는 두 종류가 있다. 동해에서 잡히는 것과, 남해와 황해에서 잡히는 것이다.
동해에서는 곰치, 물곰이라 부르고, 남해에서는 미거지, 물메기라고 부르고, 황해에서는 잠뱅이, 물잠뱅이 등등으로 불린다. 그런데, 학술적 분류 명칭으로 보자면 다 틀린 말이다. 동해에서 잡히는 꼼치과의 생선은 메기이고, 남해와 황해에서 잡히는 꼼치과의 생선은 꼼치이다.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동해안의 어민 여러분, 곰치와 물곰의 학술상 명칭은 미거지랍니다. 이제 메기라고 고쳐 부를까요?
남해안의 어민 여러분, 메기라고 불렀던 그 생선이 꼼치랍니다. 이제 꼼치라고 고쳐 부를까요?”
불가능할 것이다. 학자들이 그렇게 부르든 말든 시민은 시민끼리 부르는 이름을 고집하여도 된다. 그런 거 안 지킨다고 벌금 낼 일도 없다.
시민의 일상의 언어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조상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곰치와 물곰 이 두 명칭이 강세인데, 곰치가 약간 더 힘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여기서는 곰치라고 쓰기로 한다.



정약전도 술병이 좋다 하였다.
조선시대 정약전의 저서 <자산어보>에 꼼치과 생선이 등장한다.
‘자산’은 흑산도인데, 흑산도는 황해에 있다. 그러니 정약전이 본 생선은 학술상 분류에 의하면 꼼치일 것이다.
<자산어보>에 실려 있는 꼼치의 명칭은 해점어(海鮎魚)이다. 점어(鮎魚)는 메기이다.
해점어는 우리말로 풀면 바다메기이다. 물메기라는 명칭이 그때에도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정약전은 해점어 아래에 미 역어(迷役魚)라는 속명(俗名)을 기록하였다.
미역어는 미거지와 유사한 발음이다. 미꾸라지와도 발음의 유사성을 가진다.
겉이 반질하여 손을 대면 저절로 밀릴 것 같은 형상을 두고 ‘미끄럽다’라도 한다. 미꾸라지는 “미끄러운+지(명사화 접미어)”로 풀 수 있다.
미끄럽다의 어근은 ‘미끄-’ 또는 ‘미끄ㄹ’이다. 정약전이 살았던 시대의 흑산도에서도 꼼치의 질감을 표현한 ‘미끄-’ 또는 ‘미끄ㄹ’이 붙은 어떤 말이 속명으로 쓰였을 것이다.
그것을 정약전이 한자의 음을 빌려 이두식으로 迷役魚[미역어]라 적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맛이 순하고 술병에 좋다’고도 했는 데 조선시대에도 즐겨 먹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못생기고 맛이 없어 버리던 생선”이라는 말은 바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꼼치과 생선이 잡히는 지역을 두루 취재한 바에 의하면 어떤 어부이든 이 미끈하고 물컹하며 못생긴 생선이 그물에 걸려오면 바다에 던져 버린 적은 없었다고 하였다.
“그 맛있는 생선을 왜 버려” 하는 분들도 계셨다.




맑게 혹은 매콤하게
곰치는 겨울 생선이다. 깊고 차가운 바다에 살다가 겨울에 들면 알을 낳기 위해 연안으로 이동을 한다.
산란기는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이다. 수명이 1년 정도라고 하니 대부분 산란 후 죽을 것이다. 그래서 알이 밴 상태로 잡히는 곰치가 많다.
곰치, 그러니까 동해에서 잡히는 꼼치과의 생선인, 정식 명칭은 미거지인 곰치는, 암컷은 분홍색이고 수컷은 검은색이다. 살을 먹자면 검은색, 알을 먹자면 분홍색을 선택하면 된다.




곰치국은 원래 어민들이 집안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곰치만을 따로 어획하는 어선도 없었으며 어쩌다 그물에 걸린 곰치로 끼니를 해결하였다.
지금이야 냉장고가 있어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곰치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말렸다.
내장 빼고 껍질을 벗겨 바짝 말리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이를 하룻밤 물에 담갔다고 국으로 끓였다. 옛날의 곰치국인데, 개운하며 감칠맛이 풍부하다.



요즘은 잘 말리지 않는다. 잡히는 대로 팔아도 물량이 부족하다. 아예 수조에 살려두기도 한다.
물렁한 살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 말린 곰치로 끓인 국을 오히려 어색해한다.
묵은 김치를 넣고 끓이는 방식이 제일 인기이다. 칼칼하고 개운하다. 그러나 곰치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은 무와 대파 그리고 마늘만 들어간 맑은 국을 선호하기도 한다.



시원하면서 감칠맛이 입에 착착 붙는 생선을 굳이 맵게 하여 맛을 버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물메기는 지방이 극히 적고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순한 감칠맛’을 내는 데에는 최고의 생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묵은 김치를 넣은 곰치국이 맛이 덜한 것이 아니다.
다른 매력이 있다. 강원도의 김치는 젓갈이 적고 양념도 적다. 그래서 익으면 톡 쏘는 맛이 있다. 개운한 신맛이다. 적절하게 넣으면 곰치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도저히 못 먹겠다는 이들도 있다. 미끄덩한 껍질이 쓰윽 따라 올라오게 되는데,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느낌이 좋지 않은 것이다.
한입 먹고는 “콧물을 마시는 기분”이라며 숟가락을 놓기도 한다.
음식은 익숙해지기 나름이다. 서너 번, 아니 딱 두 번만 눈 딱 감고 먹으면 그 다음에는 겨울만 되면 동해 가자는 말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