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마을은 햇살을 오래 품은 듯 온기로 가득했다. 난방을 따로 하지 않아도 겨울 한 철은 너끈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구불구불 이어진 2차선 도로를 달려 찾아간 마을의 문화 전승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깨달았다. 그 따사로움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 위촌리, 우추리, 그리고 도배마을의 특별한 설문화 ‘도배례’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 총 120가구 350명이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조선시대 풍기군수를 지낸 위천(渭川) 김상적의 호를 따서 위천으로 불리다 천(川) 대신 촌(村)을 사용하면서 지금의 ‘위촌리’가 되었다. 이곳은 또 누워있는 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묏자리에서 소가 나왔다(우출牛出) 고 해서 ‘우추리’라고도 불린다.
사실 이름이며 유래는 여느 마을과 별반 다를 것 없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도배례(都拜禮). 이른바 합동세배를 하는 풍습 때문이다. 해서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도배마을’이다. 다양한 이름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진 이곳에서는 매년 설 다음날인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주민들이 촌장을 모시고 세배를 드리는데 이 전통은 조선 중기인 1577년 마을 주민들이 대동계를 조직한 이후 지금까지 442년 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율곡 이이 선생이 만든 서원향약과 해주 향약에서 비롯돼 강릉의 계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 경로효친, 4세기를 넘어 전통을 이어가다
위촌 마을은 장수마을로도 유명하다. 평균 나이 80대. 생존해 있는 최장수 어르신은 104세 할머니다. 촌장은 마을에서 최고령자가 이어받는데 대체적으로 90세 이상이 되어야 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촌장은 93세 최종준 옹이다.
남성들만 참석하는 것이 규율처럼 이어져 온 도 배례에 일대 변화가 찾아온 것은 12년 전인 2007년 마을에 위촌 문화 전승관이 건립되면서부터다. 이전까지는 촌장의 집에서 모여 행해졌는데 마을 주민들이 함께 절을 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생겨나고 이때부터 여성들도 함께 합동세배를 드리고 있다.
문화 전승관에서 열리는 도 배례의 순서는, 흥을 돋우는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마을 주민들이 촌장과 부촌장에게 차례로 세배를 올리고, 이어서 주민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서로 맞절을 하며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빈다. 촌장이 덕담을 건네고 나면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으며 미처 하지 못한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400년을 이어온 정월 초이튿날의 마을행사는 비로소 끝이 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어지고 있는 오랜 풍습을 기록하기 위해 매년 정초부터 찾아온 방송국과 신문사의 취재 열기도 진풍경이다. 한 분야의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명인이나 달인의 경지에 오르듯 전통도 400년 넘게 이어지면 명물이 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전통도 이 정도면 예술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다른 마을들로까지 전파되고 있는데 현재 34곳의 마을에서 도 배례가 열리고 있다.
또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 등록도 추진 중이다. 강릉시는 사진과 영상, 자료를 확보해 내년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도 배례를 주관하는 대동계 이 석봉 회장은 “계속 이어질 수 있게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관심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강조한다. 올해 나이 81세. 아직 마을에서는 청년 축에 든다며 웃는 그 선한 눈매에는 ‘도 배례’에 대한 자부심과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전통도 그것을 이어갈 중간세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무형문화재 지정이 더 필요한 이유다.
# 에필로그
경로효친, 공경, 효도.
이제는 잊혀버린 골동품 같은 단어들을 보물처럼 품은 채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며 그 맥을 이어가는 마을. 촌스럽고 고리타분하다 해도 온 마을 주민들이 한복을 차려 입고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두고 공손히 절을 올리며 서로에게 한 해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모습은 사라진 가족공동체, 마을공동체를 그대로 되살리며 조금씩 이웃마을로 번지고 있다. 그 모습이 정겹고 따습고 훈훈하다. 그 온기에 시린 손을 내밀어 내내 곁 불을 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