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였던 도토리묵
지중해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곳곳이 도토리나무였다. 땅바닥에 지천으로 도토리가 깔려 있었다.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도토리 안 주워가나요?” 돌아온 답은 이랬다. “여기서는 도토리 안 먹어요.” 세상에. 돼지나 먹는단다, 세상에. 그 자리에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서 보니 도토리를 먹는 지역이 한반도와 일본의 일부 지역밖에 없다. 그들이 도토리묵 맛을 모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잠시였고 우리 땅이 참 척박한 것이 맞구나 싶어 우울하였다.
도토리는 매우 떫다. 탄닌이 많기 때문이다. 다람쥐나 멧돼지는 괜찮으나 사람이 생으로 먹으면 탈이 난다. 그래서 껍데기를 까서 물에 우려야 한다. 이를 다시 빻고 끓이고 식히고, 손이 참 많이 간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식용을 포기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 조상은, 도토리라도 먹어야 했다. 사람은 무엇이든 먹다 보면 익숙해하고 그 익숙함을 맛있음으로 여긴다. 등산길 옆 주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음식이 도토리묵이다. 시골스러운 식당에서 차려내는 밥상에도, 도심의 막걸릿집에도 도토리묵은 반드시 있다. 궁핍의 음식을 출발하였을 것이나 이제 한국인에게는 거의 솔푸드이다. 특히 산으로 도토리를 따러 다닌 경험이 있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동네마다 달랐던 도토리묵 맛
도토리묵을 먹을 때면, 도토리묵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나이 50세 이상이고 농촌에서 살았으면, 산에서 직접 주워오고, 이를 가지고 할머니나 어머니가 묵을 쑤었고, 이 ‘수제’의 음식을 맛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들이 대체로 대화를 주도한다.
그런데, 맛에 대한 그들의 기억은 제각각이다. “씁쓸한 게, 옛날에 먹던 그 묵이 아니야. 구수해야 하는데.” “아냐. 원래 씁쓰레한 맛이 있어.” 이때 씹는 맛까지 따지고 드는 이가 있으면 더욱 복잡해진다. 무엇이 진짜인지 답을 찾을 길이 없다. 여기에 직접 쑤었다고 주장하는 식당 주인까지 나서면 그 자리는 거의 ‘100분 토론’ 수준이 되어 버린다.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너도밤나무 등의 열매 모두를 이르는 말이다. 이 열매들이 다 묵의 재료가 된다. 나무마다 그 맛이 다 다르다. 가령, 상수리나무 도토리로 묵을 쑤면 쓰고 떫기만 할 뿐 구수한 맛은 미미하다. 졸참나무의 도토리는 속껍질을 까고 그냥 먹어도 될 만큼 달아, 이 졸참나무 도토리로 묵을 쑤면 쓰고 떫은맛이 적고 달고 구수하다. 이런 식으로 각각의 도토리들은 각각의 맛을 낸다. 그들의 고향 뒷산에는 여러 도토리나무 군락이 있었을 것인데, 그 수종에 따라 기억의 맛이 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린 창자가 소리쳐 운다"
도토리나무는 한반도 어디서든 자란다. 다람쥐, 멧돼지 등 산짐승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 도토리는 귀중한 음식이었다. 농경시대 이전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도토리를 먹었다. 요즘처럼 기호 음식으로 먹었던 것은 아니다. 식량이었다. 그것도 흉년에 목숨을 버티게 해주는 귀한 식량이었다. 고려 말 윤여형이 지은 ‘상률가(橡栗家)’라는 시가가 있다. 상(橡)은 도토리나무이고 률(栗)은 밤나무이다. 윤여형이 말하는 상률(橡栗)은 도토리나무와 밤나무, 또는 도토리와 밤이 아니다. ‘도토리밤’이다. 도토리를 밤처럼 여겨 붙인 이름이다. 함경도 사투리에 도톨밤이란 말이 있는데, 상률은 도톨밤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상률가’ 앞부분을 옮긴다.
“도톨밤 도톨밤 밤이 밤 아니거늘/ 누가 도톨밤이라 이름 지었는고/ 맛은 씀바귀보다 쓰며 색은 숯보다 검으나/ 요기하는 데는 황정 못지않다/ 촌 늙은이 마른 밥 싸가지고/ 새벽에 수탉소리 들으며 주우러 가네/ 천길만길 높은 저 위태로운 산에 올라/ 가시넝쿨 휘어잡고 원숭이와 싸우면서/ 하루가 다 가도록 도토리를 줍건만/ 도토리는 광주리에 차지 않고/ 다리만 나무처럼 굳고/ 주린 창자가 소리쳐 운다(후략)”
굶주림의 시대는 1960년대까지 있었다. 도토리를 주워 와도 묵을 쑬 생각은 못 하였다. 껍질 까고 물에 담가 떫은맛을 우려낸 후 밥을 지었다. 도토리 밥이다. 도토리묵은 도토리를 갈아 비지를 빼고 전분만 내려 쑤므로 그 양이 퍽 주니 그 시대에는 호사로운 음식이었다. 그 야들한 식감의 도토리묵은 특별한 날에나 먹었다.
요즘은 산에 올라 도토리를 주울 수 없다. 국립공원 지역에서는 도토리를 줍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그 외 지역에서도 도토리를 주우면 눈총을 받는다. 다람쥐 먹을 식량을 빼앗는 야박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요즘 시중에서 먹는 도토리묵은 대부분 중국에서 가져온 도토리 또는 전분으로 쑨 것이다. 그러니, 주점에서 도토리묵 한 사발 놓고 벌이는 고향의 맛 타령, 어머니 맛 타령은 허망한 일이 되고 말았다.
도토리묵은 추억을 불러오고
한때 도심에 도토리묵 집이 제법 생겼었다. 인테리어도 말끔하였다. 도토리가 건강 음식이라는 소문이 난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 즐기던 음식이었는데, 그랬다.
강원도를 여행하다 보면 간혹 묵집을 만난다. 마당에 커다란 솥이 걸려 있기 마련인데, 묵을 쑤는 솥이다. 묵 쑤는 일이 참 고되다.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끔 주걱질을 장시간 해야 한다. 묵집의 묵은 대체로 두 종류가 있다.
메밀묵과 도토리묵이다. 어느 것이 더 맛있는가 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다. 요즘은 도토리묵 내는 집이 드물어 도토리묵을 더 먹게 된다. 메밀묵은, 막국수 내는 집에서도 많이 낸다.
도토리묵으로 주문하면 두툼하게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게끔 나온다. 무침은 도토리묵에 오이, 당근, 쑥갓 등을 더하고 양념장으로 무친다. 조금 더 ‘강원도스러운 음식’으로는 묵밥이 있다. 묵사발이라고도 한다. 국물을 넉넉하게 잡고 묵을 길쭉하게 썰어 넣는다. 신 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오이나 당근의 채도 더한다. 김을 가루 내어 올리고 깨를 뿌린다. 고추 다짐 양념을 한다. 여기에 밥이 말아져 나오면 옛날 방식이고 따로 나오면 요즘의 방식이다. 대부분 차게 먹는데, 겨울에는 따뜻하게 먹기도 한다.
훌 훌 훌. 묵밥을 먹는 방법은 이것이다. 국밥 먹듯이 먹는다.
매끈하고 보드라우니 목에 걸릴 것이 없다. 한 사발 들이키고 나면 어느 틈엔가 배가 빵빵해져 있다. 그럴 때이면 외가를 기억에서 불러온다. “우리 외가는 말이야, 마당이 있었는데 말이야, 가을이면 그 마당에 도토리가 쫘~악 깔려. 할머니가 뒷산에서 따온 것인데 말이야.”
맛의 99%는 추억이다.
촬영협조
주천묵집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1282-11 033-372-3800